170여 일의 공백을 넘어 복직을 했다. 한동안은 복직일이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았고, 한동안은 눈을 뜨고 나면 내일이 복직일 것만 같았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 나는 새학교에서 복직을 했다.

업무 분장은 일찍 결과를 받았다. 올해는 학년을 나 혼자 책임지는 것도 아니고, 업무도 생활&안전을 나 혼자 다 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복직하고 한 일은 거의 없다시피하다.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기초시간표 짜고, 담당자 연수 다녀오고. 딱 그 정도만 했다. 교실이 공사중이어서 아직 이사는 시작도 안 했다.

 

그런데 몸은 꽤나 피곤하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내가 이제 일주일 7일을 움직여도 되는 체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믿었는데, 그건 아무래도 출근하지 않는 자의 오만이었던 것 같다.

 

서류상 경력은 12개월, 반년간의 병가로 사실상 7개월차인 내가 올해 바라는 것은,

1. 무사하고 건강하게 1년을 살아낸 교사되기

2. 학생들 무사히 다음 학년으로 올려보내기

이렇게 딱 두 가지.

 

학생들의 첫날을 생각만 해도 막막하고 걱정이 된다.

그래도 복직 한 번 가보자고.

살면서 이렇게 영화관을 많이 간 해가 없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을 보고 왔다. 살면서 처음 포토티켓도 뽑아보았다. (티켓이라기보다는 신용카드 같은 재질이라 놀랬다.)
 


영화를 먼저 본 친구에게 미리 경고를 받았다. 직업 특성상, 특히나 병가를 낸 나에게 PTSD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예시로 든 건 무능하고 몸 사리는 관리자였다. 뭐 병가 들어간지 벌써 세 달이 다 되어가는데 그렇겠어? 의사 선생님도 나 보고 예후가 괜찮댔어. 병원에 다녀왔다는 자신감으로 영화관을 갔다.
생각보다, 아니 그냥 몹시 힘들었다. 일단 묻고 보려는 학교의 관리자들, 내 자식이 잘못했을 리 없다는 보호자의 자세,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여러 장치들로 암시되는 아동학대의 기미. <어느 가족>을 비롯해 고레에다 감독이 바라보는 아동학대, 아동학대라고 직접 언급하는 것도 아닌데 학대의 공기를 느끼게끔하는 능력이 이번 영화에서 완전히 정점을 찍었다. 

친구야, 관리자가 트리거가 될 거랬잖아! 딴 건 미리 안 알려줬잖아!

심장이 마구 뛰어서 영화관을 나갈까 수백 번 생각했다. 조금만 참아보자고 눈을 감았더니 일본어가 들려버렸다. 그랬다. 나는 N1을 딴 사람이었고, 초등학생이 쓰는 일본어 정도는 잘 들렸다. 영화관을 나와서 밥을 먹는데 손이 떨려서 돈까스를 계속해서 놓쳤다.
그래, 나 병가 받은 교사 맞구나.
 
그와 별개로 영화 자체는 정말 잘 만든 영화였다.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으로서의 영화감독이라는 것이 정말 잘 보였다. 특이하게 한 가지 사건을 세 사람의 입장에서 다룬다. 겉으로 봤을 때는 단순한 사건인데 세 가지 방법으로 볼 때 비로소 하나의 사건이 드러난다. 각 인물의 입장에서 보면 각자 다 맞는 말이고, 합리적인 생각이며, 모두가 상대에게 가해자가 된다. 객관적으로 보이는 그 무엇도 사실은 주관적인 것이다, 그걸 무엇보다도 잘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괴물은 누구인가?'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이 문장이 암시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절로 느껴졌다.

서이초 사건, 일본의 몬스터 페어런츠 문제 등과 맞닿아있는 사회적인 메시지, 주관과 객관이 교차되는 영화 자체의 시선에서 와닿는 거대한 메시지를 느꼈다.

 

교사로서도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과연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인가? 나의 시선은 객관적인가? 영화는 아니다, 끝없이 겸손해라, 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여러모로 좋은 영화였다. 괴로웠지만 다시 보고 싶을 만큼. 세상 모든 교사와 부모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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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

아침에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속이 매쓱거리고 배가 너무 아팠다. 구토와 설사함.

진술서를 구구절절히 썼다. 뭘 써야 할지 몰라서 구구절절히 썼음. 내일 수정을 해야 하는 상태이기는 하다.

다시 들었을 때는 생각보다는 고성이 크지 않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계속 귀에 "선생님!!"하고 소리치는 게 환청처럼 울렸다.

공무상 요양을 신청하기로 했다. 경험자의 조언을 들었다.

필수 서류는 두 가지 - 진단서는 이미 뗐고, 의료기록은 내일 뗄 것.

여기에 추가해서 10년간의 진료기록을 제출할 예정이다. 내가 이 일 전에는 이런 문제가 전혀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서.

녹취록 따기가 너무 싫어서 지금껏 했던 전화통화들을 목록으로 정리했다. 학부모나 업무 관련 전화들. 학사일정 100일 동안 하루 0.9통을 전화했다. 이러니까 탈이 나지.

 

9월 11일

오늘은 눈뜨자마자 신물은 올라왔으나 토하진 않았다.

엄마가 일하다 중간에도 전화를 한다. 저녁에는 엄마가 걱정하기 전에 내가 먼저 전화했다.

학급의 담임이 교체될 것 같다. 아이들의 얼굴과 목소리, 행동이 눈에 밟힌다. 보고 싶다. 하지만 이왕이면 얼굴을 모르는 기간제 선생님이 맡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많이 미안하다.

오전에 나가서 서류 다 떼고 오려고 했는데 신분증을 안 들고 나갔다. 하. 왕복 3시간이 넘는데 바보같이. 공무상 요양보다는 병가가 더 급한 일이라 그것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노조 사무실에 가서 진단서 스캔을 뜨고 나이스에 등록했다. 진술서도 뽑아서 서명하고 스캔 떠서 제출했다.

제출을 업무메일로 했어야 했는데 카톡으로 했다. 예민한 사안인 만큼 공적인 루트로 해야 됐는데 후회가 남는다.

사무실에서 동기 학교가 가까워서 같이 밥 먹었다. 기분이 좀 발랄해졌다.

돌아오는 버스에 사람이 나 밖에 없었다. 괜시리 눈물도 나고 마음도 복잡했다. 의식하지 않으면 숨을 내쉬고만 있고 들이쉬지 않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도 숨이 가쁜 것은 없어졌다.

9월 6일 수요일 3교시 후 쉬는시간, 학생이 스스로 상처를 냈다.

보호자가 비협조적이었던 학생이었기 때문에 사촌(같은 반)을 동행하여 보건실을 가도록 했다.

반창고를 붙이고 돌아왔다.

 

수업 후 관리자 두 분에게 보고하고 보호자에게 연락할지 물었다.

교실로 돌아와 바로 전화했다.

통화 시간 47분 47초. 좋은 분위기로 통화를 종료하기는 했으나 반 이상은 소리치는 소리를 들었다. 전화를 끊을까 지속적으로 고민하며 침묵을 유지했으나, 학교로 찾아올까봐 끊을 수 없었다. 학교로 찾아오면 나를 보호해줄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학교의 결정권자는 도어록으로 방문을 안전하게 잠근 채로 있다가 사후 보고를 하면 대책이라고 나의 업무를 늘릴 것이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손이 달달 떨렸다.

 

동료 선생님과 저녁을 먹었다. 수다를 떨면서 다소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다.

집에 들어왔다. 눈물이 계속해서 떨어졌다.

 

수면유도제를 먹고 자려했으나 새벽 4시에 겨우 잠들었다. 40분~1시간 단위로 잠에서 깼다.

 

 

 

9월 7일 오전 7시 20분. 옷을 입고 현관에 주저 앉았다. 카풀하는 선생님께 먼저 가시라고 했다.

8시가 넘었으나 신발을 신을 수 없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빈속임에도 화장실에서 몇 차례 토를 했다.

교감 선생님과 교무부장님께 연락하여 병가를 내겠다고 했다.

침대에 누워 눈을 뜬 상태에서 아침과 점심을 먹을 수 없었다.

교감 선생님께서 교권보호위원회를 소집할 것인지 물으셨다. 욕설이 오간 것도 아닌데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인가 싶어서 조금 있다가 연락드리겠다고 했다.

 

6부장님이 노조에 연락하여 상근자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중간지점에서 만나서 병원까지 태워다주셨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온몸이 떨렸다.

 

의사 선생님은 출근할 수 없는 상태로 보인다고 했다.

병원에서 약을 추가로 처방받고 '3개월 이상'이 명시된 진단서를 받았다.

 

교권보호위원회 소집을 요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여전히 내가 인정받을 수 있는 사례인지 걱정이 되었으나, 이런 일이 한 번에 그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요청하기로 했다. 지금 이 보호자를 멈추지 않으면 앞으로 우리반 아이들을 맡을 선생님들이 상처받게 될 것이다. 안 그래도 쉽지 않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반인데 보호자가 지속적으로 교사에게 반감을 드러낸다면 정말로, 이 아이들은 매년 담임교체가 될지도 모른다.

 

 

 

9월 8일 눈을 뜨자마자 빈속에 토를 했다.

교감 선생님께 하루 더 병가를 냈다. 우선 일주일 내겠다고 했다.

어머니가 괜히 일주일 뒤에 나갔다가 다시 쉬게 되면 학교 선생님들이 힘들어지니 병가를 다 쓰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전화가 왔고, '어디가 교권침해라고 느꼈는지' '왜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는지' '전화를 중간에 끊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는 본인은, 내가 전화를 끊어서 난리가 나면 문 잠그고 나오지를 않을 것이다.

그 분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 교감 선생님께 공무상 병가를 요청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2월까지 병휴직을 내겠다고 했다.

 

 

 

9월 9일 오전 5시 42분 토했다.

밤늦게 녹취를 하고, 진술서를 쓰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가슴이 뛴다. 녹음 파일을 열어서 뒷부분만 살짝 들었다. 그래, 별거 아니라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도 가슴이 뛴다.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다. 확실히 내 상태가 정상은 아니다.

아주, 아주 체력이 바닥났다. 어제 밤 긴장해서 잠을 자지 못했고, 아침 먹은 건 체했다.

 

아침에 바짝 얼어 있었다. 교감선생님이 "준비는 다 되었습니까?" - 아니요. 선생님. "뭐가, 뭐가 아직 안 되었습니까?" - 선생님, 제 마음이요. 제가 준비가 안 됐어요.

입학식을 제외하면 아이들과 보낸 시간은 1시간 남짓. 아직 다들 수줍고 부끄러워서 아주 조용했다.

생각보다 더 많이 얼어 있어서 내일부터 어떻게 꾸려 나가야 할지가 걱정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업무가 정말 많다. 많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많다.

오늘만 외부에 연락해서 서류를 받거나 협조를 해야 하는 일이 2건 있었고, 내일 중으로 결재 상신이 3건 정도 올라가야 한다. 으아악. 동기들 중에 나보다 결재 상신 잘 올리는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

업무하다가 복무 시간 중에 수업 준비는 손도 못 댔다. 교과서 펼쳐보지도 못했다.

오후 8시나 되어서야 겨우 알림장을 올렸다.

이제 내일 수업 준비해야 한다.

 

아이들 다 보내고 퇴근하면서 깨달았다. 아, 나 가정통신문 한 통도 안 보냈네?

예이, 저는 1학년 입학식에 가정통신문을 한 통도 안 보낸 교사가 되었습니다.

엄청 바쁜 일주일이었다. 졸업식, 신규 연수 수료, 임명식, 출근.

오늘은 집에서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했다. 잠자는 것과 먹는 것, 말하는 것만 했다.

 

일주일 간 감정기복이 있었다. 내가 교사가 맞나? 교사를 해도 되나? 정말로?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과 내가 신규인데 어떻게 잘하냐는 마음과 기타 등등 다양한 감정으로 머릿속이 복잡다단했다. 잠들면 꿈에서 출근해서는 우당탕퉁탕했다. 새벽에 잠깬게 몇 번인지 모르겠다.

 

신규교사 발령은 3월 1일자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3월 1일부터 출근할 수가 없다. 당장 3월 2일에 아이들을 만나서 수업을 진행하고 업무를 하려면 그 전에 교실 이사도 해야 할 것이고 수업 준비도 해야 할 것이고 업무 인수인계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경기 쪽은 2월 중순부터 출근인 것으로 알고 있고, 이쪽 지역은 학교에 따라 짧게는 사흘, 길게는 열흘 정도 나간다.

신규 교사나 기간제 교사, 복직 교사는 공식적으로는 3월 1일부터 일에 들어가기 때문에 대부분 이 기간은 무급으로 일한다. 관리자에 따라 여비 지급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드물다.

옛날에는 2월 28일에 발령받아 3월 2일 첫 출근 해서야 몇 학년인지 알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수업 들어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그보다는 낫다. 그러나 다소 비합리적이다.

 

현직에 나오면 업무용 휴대전화를 따로 두려고 했는데 이미 실패했다. 출근 첫 날 우유급식 수요 조사를 하느라 학부모에게문자를 돌려야 했기 때문이다. 이 글을 보는 장차 신규 선생님이 계시다면 꼭 발령 받자마자 개통하시길 바란다.

번호를 2개 쓰는 방법은 투폰 서비스, 투 넘버(듀얼 넘버) 서비스, 안심콜, 알뜰폰 등이 있다.

- 투폰 서비스: 한 컴퓨터에 윈도우 계정 2개 심듯이 한 폰에 안드로이드 개정이 2개 들어감. 학부모에게 원폰번호가 갈 일은 거의 없지만 모드 전환 속도가 매우 느림. 백업이 안 됨(중요!). 

- 투 넘버: eSIM 앱을 깔아서 하는 방법. 지원하는 기종이 한정적임(내 폰으로 안 됨.)

- 안심콜(안심번호): 천원 대의 매우 저렴한 서비스. 상대방에게 안심번호가 뜨길 바라면 *#어쩌구 번호를 누르고 전화번호를 입력하면 된다. 그걸 깜빡하면 원폰번호가 노출된다. 문자를 주고 받을 수 없다. 

- 알뜰폰: 원래 폰 번호가 노출될 일은 거의 없음. 그러나 폰을 2개 들고 다녀야 해서 번거로움. 우체국을 가거나 인터넷에서 유심을 주문해서 개통해야 함.

아이들 수도 적으니까 올해는 이 번호를 쓰고, 내년에는 알뜰폰 만들든가 해야지.

 

학교에서는 어리버리 우당탕퉁탕하고 있다. 사방에서 지시와 조언이 쏟아지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발령받은 학교는 작다. 큰 학교에는 업무가 없는 사람도 있곤 한데 우리학교는 모두가 업무를 6~7개씩 가지고 있다. 학교 업무가 그렇고, 단일 학급이라 학년 업무도 온전히 혼자 해내야 하니 만만치 않다.

나도 벌써 아이들 이름표 만들어 붙이고, 우유급식 조사하고, 입학식 준비(이건 거의 다른 선생님들께서 도와주고 계시지만)도 하고, 학년 교육과정 짜고 있다. 놀랍게도 아직까지 입학식 동선도 정하지 않았고, 알림장을 위한 밴드 개설이나 첫날 아이들 집으로 보낼 안내문도 쓰지 못했으며, 업무나 수업 준비 등등은 시작도 못했다. 업무 가이드북과 지도서, 한글 교재 등은 펼쳐보지도 못함. 흑흑.

임명식에서 동기들을 만났는데 대부분은 학년 업무가 없다든가, 학교 업무가 매우 간단했다. 동학년 선생님들이 있어서 눈치보며 함께 하면 되는 것 같았다. 신규 교사로 귀하게 길러지고 있는 것 같았다.

직면하면 슬퍼질 것 같아서 외면하고 있지만, 나, 강하게 길러지고 있는 건 맞는 것 같다.

발령을 받았다.

이 챕터의 이름도 이제 교실일기로 바꿔야 하나 싶지만 아직 교원자격증을 교부받지 못했으므로 일단은 교대생일기라고 하겠다.

 

지난 일주일은 폭풍 같았다. 사실 발령 이후로 사흘 정도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 같았다.

발령장을 확인함과 동시에 학교에서 연락이 왔고, 학교를 가서 인사를 하고 학년과 업무를 신청했다. 학년과 업무를 받았다. 집을 구했다. 이사날짜도 잡았고, 인터넷 개통, 가스 계약도 완료했다. 랜선으로 연수도 받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게 내 일인가 싶다. 몸은 착실히 움직이고 있지만 정신은 현실감이 없다.

 

내가 교사야? 정말 교사야? 내가 아이들을 가르쳐도 된다고? 담임을 한다고? 어떻게?

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업무 신청서에 사인하면서도 이게 정말 내 업무를 받는 건가 싶었다.

 

오늘 조금 정신을 차리고 뭔가 찾기를 시작했다.

우선 인터넷 서점에 1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쓴 책과 <신규교사 살아남기>를 구매했다. 첫 출근까지 일주일간 하나씩 읽으면서 내가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알아볼 예정이다.

다이어리 속지를 주문했다. 임용 이후 하나도 쓰지 않다가 이제 '적자 생존(Write and be survive)'의 현장으로 투입될 것이므로 글자를 쓸 종이를 샀다. 실습 때 늘 학급 소개 자료를 A5로 인쇄해 칼타공기로 뚫어다 수첩을 만들어 다녔다. 올해 학급일지나 업무 수첩도 그렇게 써보려고 한다.

1학년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담긴 블로그를 찾아 나서고 있다. 일단 지금 현재로 가장 열심히 보고 있는 것은 네이버 블로그 '멍멍샘의 교실(https://blog.naver.com/haohao777)'. 읽어도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봐두면 나쁘지 않겠지.

 

첫 출근까지 일주일. 열심히 준비 해보자고

 

실습 때 매일 실습록을 제출하면 선생님께서 지도조언을 써서 주신다. 실습 기간 중에는 정신이 없기도 하고, 수업을 잘 못했다 싶을 때는 지도조언을 열기가 무서워서 굳이 들춰보지 않았다. 2주간의 짐을 정리하면서 슬쩍 들추어본다.

'좋은 수업이었다, 좋은 선생님이 될 거다, 나중에 현직에 나오면 꼭 같은 학교에서 만나면 좋겠다'

선생님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참 따스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들이 준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다. 2학년 아이들이라 그런지 모두가 사랑한다고 써주었다.

사랑 고백을 이렇게 받아보기는 처음이다. 사랑한다는 말을 볼 때마다 '아휴, 우리 2주 밖에 안 봤는데' '내가 뭘 했다고 사랑한다고 하는 걸까' 생각한다. 예쁘게 꾹꾹 눌러쓴 글씨들이 좋아서, 나도 손글씨로 써줄 걸하고 아쉬워한다.

이번 실습에서 내가 했던 수업 중에 유달리 공을 들인 수업이 있었는데, 아무도 그 수업 얘기를 써주지 않은 걸 보고 아주 약간 섭섭해 한다. 다들 종이접기가 재밌고, 길이 재기가 재밌었단다. 그치, 그 수업들도 열심히 준비하긴 했지. 하지만 다양한 가족의 형태 알아보는 수업, 그거야 말로 역대 내 수업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수업이었는데...

나에게 관심이 없는 줄만 알았던 아이가 누구보다 길게, 구체적으로, 그림도 그려가며 편지를 써주었다. 종종 이럴 때가 있다. 나에게 살갑게 대해주던 아이가 다음 실습 때 마주치면 몰라보고, 나와 거리를 두던 아이가 다음에 만나면 누구보다 열렬히 손을 흔들어주는 그런 경우가 있다. 사람을 쉽게 판단하면 안 된다고 다시 한 번 생각한다.

아, 근데 다시 봐도 이 친구는 놀랍다. 글 쓰는 거 굉장히 싫어하는 줄 알았다.

 

오늘은 무용 수업이 있는 날이다. 학교 수업은 아니고, 취미로 하는 수업이다. 일주일에 한 번 듣고 있기도 하고, 그래도 스트레스 푸는 시간이 일주일에 한 번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올해도 듣고 있다. 2학기에 어떻게 할지가 고민이다. 일주일에 3시간 정도는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공부할 시간이 줄어서 힘들 것 같기도 하다. 결제를 해두고 때에 따라 빠지기도 하면서 다닐까 생각 중이다.

 

기본이론 14일 작전을 시작했다.

지난해 임용 1차 끝나고 4학년들에게 밥을 몇 번 샀다. 덕분에 받은 임용 자료 양이 상당하다. 자료 중에 기본이론을 14일마다 1회독씩 하는 스케줄표가 있길래 오늘부터 시작했다. 아직 다 못했다. 인강도 듣고 해야 하는데 언제 다 하고 언제 자지? 내일 9시에 동기들이랑 공부도 하기로 했는데. 인스타에 남들 공부하는 거 보면 남들은 학기 중에도 하루 5~6시간씩 잘 하는 것 같다. 나는 왜 그게 안 될까?

내 장점은 조금씩, 꾸준히, 지치지 않고 하는 거니까 조급해하지 않기로 마음 먹는다.

어제부로 실무실습을 마쳤다. 그말인 즉슨, 더 이상 나에게는 실습이 없다는 뜻이다.

다음 수업은 실전이다. 담임 선생님이 형성해주신 라포와 규칙, 체계, 뒷수습과는 안녕을 고하게 되겠지.

나는, 꿈은 많지만 현실로 나아가는 것은 두려운 피터팬 교생이라서 그런 부분이 조금은 아득하게 느껴진다.

 

이번 실습을 요약하자면 다 쓴 볼펜심 하나다. 저 볼펜심은 내가 실습을 시작하기 전날 갈아끼웠다. 실습 첫날 쓰기 시작해서 실습 마지막날, 담임 선생님께 편지를 쓰면서 잉크를 다 썼다. 짐을 싸면서 '볼펜심을 새로 끼워가니까 따로 리필은 안 챙겨도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편지를 쓰다가 잉크가 뚝 끊겨버려서 동기에게 볼펜을 빌려야 했다.

이번 실습을 그렇게 열심히 살았냐고 묻는다면, 네 번의 실습 중에서 가장 여유로웠다고 생각한다. 늘 12시에 잠들어 6시 반에 일어났고, 이전까지 월화수목 야근이었던 데 반해 이번엔 칼퇴근한 날이 더 많았다. 지금까지 실습은 끝나고도 체력이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해서 2주 정도는 잠적하다시피 살곤 했는데 이번엔 이렇게 블로그에 글쓸 힘도 있다. 좀전까진 인강도 들었고. 여유로웠는데도 새 볼펜심이 다 닳았으니, 내가 천성이 부지런한 사람이었나 싶으면서 괜시리 뿌듯하다.

 

누가 그랬다. 4학년에게 실습은 힐링이라고.

참관, 수업1, 수업2 때는 학교를 쉬엄쉬엄 다니다가 실습을 갔다. 나의 에너지를 실습에 집중했다.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2주를 살았던 것 같다. 이번 실무실습은 임용 공부를 하다가 갔다. 객관적인 공부량이 어떠했던 간에 모두가 자기자신을 몰아세우다가 갔다. 실습에 가서는 자기 자신을 몰아세울 필요도 그다지 없었고, 그럴 에너지도 없었던 것 같다. 실습 시작과 동시에 몸이 나른해졌다고 할까.

작년처럼 죽을 것처럼 수업 준비를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내일을 준비했다. 대충한 건 없었다. 교실에 들어가면 오늘은 뭐하는지, 점심은 같이 먹는지 물어보는 목소리를 들으면 대충하지 않게끔 그렇게 되곤 한다.

 

내 수업에 대한 만족도만 놓고 본다면 이번에 가장 잘 했던 것 같다. 지도안대로 흘러가지는 않았지만, 아이들과의 상호작용이 있었고, 모두가 참여한다는 느낌이 있었고, 배움이 일어난 것 같다고 느꼈다. 수요일까지는 어깨가 한껏 올라가 있었다. (목요일에 일일담임하면서,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없는 상태에서 수업해보면서 수그러들었지만.)

마지막 실습에 좋은 선생님과 좋은 반을 만났다. 독립하는 데에 두려움 가득한 피터팬 교생도 조금은 내 반 아이들을 꿈꾸게 되었다. 이번에 배우고 느낀 것이 많다. 이글에 다 쓰기에는 글이 너무 길어질 듯하다. 잊지 않게끔 따로 글을 써서 올리려고 한다.

 

이제는 정말 임용 공부를 미룰 핑계가 없다. 실전을 하기 위해 시험부터 합격해야지.

각론 교재를 결제했다. 15만원 조금 안 되는 돈이 와장창 빠져나갔다. 전과목도 아니고 국수사과만 있는데도 그렇다. 수학, 사회, 과학이 검정으로 바뀌면서 예년에는 전과목을 살 수 있었던 돈으로 국수사과 밖에 못 산다. 3월 초 현재까지 결제한 책값이 30만원을 넘었다.

꼭 올해로 끝내자. 내년에는 돈 안 들게.

 

통장을 보니 속이 쓰리다.

 

많은 돈을 쓰면서 공부를 잘 하고 있는가? 음, 잘 모르겠다.

지난 두 달 간 공부하면서 느낀 수능과 임용의 차이점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수능은 눈앞에 안 보이는 가상의 경쟁자와 경쟁하지만 임용은 눈앞의 친구가 경쟁자다.

둘째, 수능은 문제집을 풀면서 공부한 걸 확인할 수 있는데 임용은 정말 공부만 한다.

지금 날 힘들 게 하는 건 두 번째.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확인이 잘 안 된다. 그래서 답답함이 찾아올 때가 있다.

 

동기와 줌 스터디를 시작했다. 우리 과에 백구를 듣지 않는 사람이 둘 있는데 나와 이 친구다.

그렇게 남겨진 두 사람끼리 공부를 시작했다. 스터디 자체는 1월에 시작했는데 그간은 설렁설렁하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월 말부터는 아예 집에서 줌을 켜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아침 9시에 줌을 켜고 들어간다. 10시부터 어떻냐고 했지만 기각되었다.

월화수목금토일 일정을 잡았다. 그나마 주말은 저녁에만 한다. 그래서 오늘은 늦잠을 잤다.

아아 공부 쉽지 않다. 침대에 눕고 싶고, 뭘 좀 먹고 싶고, 스도쿠를 하고 싶다.

엄격한 스터디원과 함께해서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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