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간 일한 아동센터를 퇴사했다.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 눈에 밟혀서 조금만 더 일할까 생각도 했지만, 1월부터 지금까지 일하면서 도무지 공부에 집중을 못하고 있어서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기분이 참 묘하다. 매일 같이 걸었던 출퇴근길을 뒤로 하고 집에 들어오는데 참 뒤숭숭했다.
출근하고도 실감나지 않았다. 잠시 쉬고 돌아올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실감하지 못한 건 나뿐만 아니라 원장 선생님, 실무자 선생님,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같은 사람에게 '오늘이 정말 마지막이냐'는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아동센터에는 수많은 자원봉사자 선생님, 멘토링 선생님, 실습 선생님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오늘부터 온다고 해놓곤 다음 시간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그래서 아이들은 오늘 온 선생님이 내일도, 다음주에도 와줄 거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아이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선생님이 또 오는지, 언제까지 오는지'였다. 그래서 믿음과 약속을 저버리는 선생님이 되지 말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던 것 같다.
3년이라는 세월은 짧지 않다. 특히 아이들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은 지금까지 인생의 3분지 1을 나와 함께 했다. 포도를 보면서도 포도라는 단어를 몰랐던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고, 오늘 맛있는 걸 먹었는데 내일도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는 그 작은 가능성조차 생각해보지 못한 아이가 좋아하는 반찬, 싫어하는 반찬이 생겼다. 슬슬 나이 감각이 둔해져가는 상황에서 아이들의 성장이 나의 시계가 되었다.
나는 어떤 선생님이었을까? 음, 월급에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으로 기억되려나? 선생님은 왜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시키냐고 하는 물으면 '그게 내 일이고, 내가 월급을 받는 이유야. 나는 월급에 최선을 다할 거야.'라고 말하곤 했으니까. 한 번은 새해에는 선생님이 월급 루팡을 하면 좋겠다는 덕담(?)을 듣기도 했다.
나는 썩 좋은 선생님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다지 유머 감각도 없고, 아이들 관심사도 잘 알지 못하고, 융통성도 딱히 없으니까. 초반에는 가르치는 것도 어찌할 줄 몰랐다. 기준만 높아서 아이들을 다그치는 일도 꽤 있었다. 나와 공부하던 아이가 더 익숙한 선생님이 오니 순식간에 책상 위의 짐을 싸들고 그 선생님 옆에 앉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선생님은 '설명충'이라서 물어보기 싫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
힘들 때도 포기는 하지 않던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다. 한 명도 포기하지 않았던 선생님이었다고 기억해주면 좋겠다.
그래도 마지막 순간에는 누구 하나 빠짐없이 작별인사를 건네주었으니까, 지난 3년간 꽤 성장한 선생님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아이들을 가르치러 갔다가 내가 되려 배우고 왔다. 성인이 되고 나서 나 자신의 시야가 넓어진 계기가 셋 있다. 하나는 전적대의 동기와 교수님들, 두 번째는 어셔 생활, 마지막으로 아동센터에서의 생활.
나의 시야가 얼마나 좁은지, 얼마나 오만하게 살아왔는지 매순간순간 느꼈다. 다양한 삶의 모습들, 생각, 사람, 우리 사회에 대해 알게 되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얻은 화두들은 언제까지고 나의 과제로 남지 않을까 생각한다.
첫 실습을 마칠 때 지도 선생님이 그러셨다, "선생님(나와 실메)을 통해서 우리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그 말씀 그대로다. 아이들을 만나며 나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센터를 다니기 전까지는 목표 기준을 설정해두고 그 기준을 넘겨야만 하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은 하나씩하나씩 쌓아올리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어제보다 성장한 오늘을, 오늘보다 더 성장한 내일을 목표로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여유를 가지게 되었달까.
너무나 운 좋게 좋은 센터, 좋은 선생님들, 좋은 아이들을 만나 행복하고 보람찬 3년을 보냈다. 참 감사한 일이다.
꼭 올해 임용에 붙어서 센터에 놀러 가야지. 벌써 아이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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