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내 실습이 끝난 뒤 연일 첫 실습을 앞둔 2학년 분들과 만나고 있다. 1년 전을 돌이켜 보면 첫 실습 앞두고 참 정신이 없었다. 학교에서 지도안을 매학기 써봤지만 실습 협력 학교에서 받은 양식은 그것과 전혀 다르게 생겨서 당황했다. 수업자가 철학이 없는데 수업자 철학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평가 항목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 참 어려웠다. 아는 윗학번 모두에게 조언을 구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3학년들이나 지금 나나 다를게 없다. 그때 3학년들도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으니까 지금의 나도 할 수 있을거야.
분담과 동아리 2학년 분들과 만나서 얘기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지도안 쓰는 중인 분들과는 지도안 얘기를 주로 하고, 아닌 분들과는 내가 그 학년 들어갔을 때 어땠는지, 그 과목은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지금 2학년 분들은 학점 경쟁 자체는 우리보다 훨씬 세다. 코로나로 신입생 시절을 거의 집에서 보내면서 고등학교 4학년처럼 대학교 1학년 시절을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도안에 대해서는 그때의 우리보다 더 막연한 것 같다. 아무래도 교생들에게는 지도서가 나침반이 되어주곤 하는데, 우리는 그래도 지도서를 베끼는 법을 알았던 반면, 지금 2학년 분들은 지도서에 수업 모형이나 평가 방법 설명, 여러 가지 교육 이론들이 있다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우리는 1학년 1학기부터 매학기 수업실연과 지도안 과제가 있었고, 지금 2학년 분들은 지도안을 써본 기회가 많아야 한 번 뿐이었던 데다가 쓴 지도안에 대해 피드백을 받아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수업 실연을 해본 경우도 전무하고.
담임 교수님은 코로나 시대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하셨지만 이번에 만나보니 그 최선이 닿지는 못한 것 같다.
내가 뭐라고 이걸 도와주나 시작했다가 덕분에(?) 감사 인사를 많이 받고 있다.
거의 매일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하게 되는 말이 비슷하다. 정리해보면 이렇다.
1. 열심히 써도 담임선생님은 빨간펜을 드시고, 대충 써도 빨간펜을 드십니다.
첫 실습, 첫 수업 교생이 잘할 수 없다. 그걸 한 번에 잘하면 모두가 프로라고 불리지 않겠는가? 물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담임선생님께 맡기면 곤란하다. 그건 염치가 없는거다. 내 말은, 고민해도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건 좀 덜 열심히 써서 보내도 선생님이 빨간펜을 그어주실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교생 실습 3번쯤 다녀오면 그런다, 가장 힘든 담임선생님은 알아서 하라는 선생님이라고. 왜냐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는 게 없기 때문에. 교생들은 대체로(담임이 영 이상한 경우 말고) 그거 별로라고 하면 "네, 선생님!"하고 기쁘게 고칠 준비가 되어 있다.)
2. 학급 안내 자료는 중요합니다.
학급 안내 자료에는 아이들 이름과 좌석 배치, 우리 반의 특성, 시간표, 아침활동 등이 적혀 있다. 첫 실습 때는 몰랐다. 대충 읽었다. '이름은 가서 외우지, 뭐.' 자세히 보면 그런 내용도 있다. '모둠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짐.(해석:수업에 모둠 활동 넣어도 괜찮음.)' '발표를 잘 하지 않음(주의:전체 발표 위주로 수업 짜면 적막이 흐를 수 있음.) '남자 아이들은 장난기가 많고 여자 아이들은 사춘기가 찾아와 이성을 어색해함.(주의:얼굴 보자마자 이성친구 있냐는 질문 받을 수 있음.)
3. 참관 실습도 몹시 바쁩니다.
우리 학교는 참관 실습 때 수업을 두 번 한다. 본인이 수업 하는 날 외에는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한다. 일단 8시 반에 출근하면요, 아침 활동을 합니다. 오전에 2~3개의 참관을 합니다. 참관한 건 실습록에 적어야 합니다. 참관이 없으면 특강을 듣습니다. 점심을 먹습니다. 특강을 듣습니다. 그러고 나면 3시 반, 선생님과 협의회를 갖습니다. 4시 반, 퇴근 시간이지만 내 수업 준비는 이때부터입니다. 선생님께 피드백 받은대로 수정하고, 활동지 만들어보고, 리허설 해보고. 실습록도 정리해야 하구요. 조금 지저분한 이야기지만 저는 첫 실습 첫 날에 4시 반에 처음 화장실을 가봤습니다.
4. 실습록 안 들고 가면 동기에게 택배라도 붙여달라고 해야 합니다.
매일 참관한 것, 수업 협의한 것, 아동 관찰한 것 실습록에 쓰고 지도조언을 받아야 한다. 금요일에는 부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교장 선생님 결재를 받는다. 만약 실습록을 자취방/기숙사에 두고 갔다면? 남아있는 동기에게 붙여달라고 해서라도 챙겨야 한다.
5. 공수표 날리지 마세요.
선생님 나이나 연락처, 이성친구 있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나는 단호하게 잘라버리는 편이다.
"선생님, 몇 살이에요?" -365살.
"선생님, 이성친구 있어요?" -선생님은 365살이라서 이성친구할 친구가 없어요.
나한테 물으면 딱 끊어버리는데 간혹 마지막날/친해지면 알려주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고는 곤란하니까 말해주지 않는다. 저어어어엉말 곤란하다. 아이들은 선생님이 알려주겠다고 하고 알려주지 않으면 배신감 느낀다.
6. 활동을 어떻게 짤지 모르겠으면 혹은 수업자가 딱히 의도가 없으면 지도서가 제일 나을 수 있다.
지난 학기였던 것 같다. 지도서대로 안 하면 지는 것 같지만 사실 지도서는 가장 좋은 자료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과서를 안 쓰고 수학 수업을 한 뒤 대차게 말아먹었다. 그 얘기를 듣고 다시 지도서를 폈다. '교과서로 하는 게 더 알찬 시간이었겠다. 나는 학생들의 시간을 버려버렸다.' 교생 실습은 대회가 아니니까, 기발한 아이디어 선발전이 아니니까, 내가 의도하는 방향이 딱히 없고 내가 짠 활동에 자신이 없다면 지도서가 훨씬 나은 것 같다. 이미 존재하는 아이디어를 따르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니다.
몇 년 뒤에 이 글을 다시 보면 참 떵떵거리고 살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 생각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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