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사건 이후 많은 선생님들의 목소리를 접했고, 다양한 사건의 귀추를 주시하고 있다. 여러 사건 중에서도 조금 더 마음이 가고, 응원하고 있는 사건이 가넷 선생님의 '세종시 교원평가 성희롱 사건'이다.
누가 뭐라해도 현직에 남은 교사들은 가넷 선생님께 빚을 졌다. 선생님이 공론화해주신 덕에 교사에 대한 성희롱에 대한 경각심이 퍼졌고, 교육청과 상급기관의 행태에 대해 분노할 수 있게 되었으며, 교원평가에서 서술항 문항 폐지를 권고하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가 나왔다.
선생님 본인은 교직을 떠나셨지만, 선생님의 발자취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선생님에 연대하는 마음으로, 또 선생님의 생각이 궁금해서, 가넷 선생님의 <한국에서 교사로 산다는 것>을 읽었다.
책 자체는 그리 두껍지 않다. 207쪽까지 있는 작은 책이다. 에코백에도 쏙 들어가는 크기다.
이 작고 얇은 책에 서이초 이후 1년 가까이, 거리에 나섰던 교사들의 목소리가 다양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1부는 선생님 자신의 이야기, 세종 교원평가 성희롱 사건의 타임라인과 그 과정에서 피해자 선생님들이 느낀 점이 실려 있다. 2부는 교사라는 직업이 이렇게 된 이유,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의 상관관계 등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과 주변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3부에서는 다양한 사례를 겪은 선생님들의 목소리, 그리고 선생님이 교사 집회에 나서서 한 발언을 볼 수 있다.
이 책은 가넷 선생님의 저서이면서, 동시에 나의 생각이고, 내 동료의 목소리이다.
교사는 학생에게 모욕을 당해도 학생이니까 삼켜야 한다는 시선, 공식적인 절차를 밟자고 할 뿐인데 민폐 동료가 되는 분위기, 비공식적인 감사를 실시하여 선생님의 마지막 희망까지 꺾었던 교육청, 우리의 사용인이면서도 어떤 움직임도 없었던 상급기관 교육부.
보호나 구제, 도움, 연대보다는 비난과 멸시, 압박이 익숙한 교직사회의 비정상적인 구조가 문자로 적혀 있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나의 생각이 구체화되는 느낌이었다. 막연히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나도 이렇게 생각해. 나도 이 점이 너무 어려워. 이건 정말 문제야. 수치화된 통계로 보면 더 심각했구나.'하면서 머릿속에 정리되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다시 한 번 가넷 선생님께 감사했다.
지금까지의 과정만으로도 감사했지만, 이 모든 것을 책에 고스란히 담아주셨다는 것에 다시 한 번 감사했다.
교직의 어려움을 담은 텍스트들은 어디엔가 있다. 하지만 그 책들이 나의 마음을 대변하는가?라고 묻는다면 딱히 아니었다. 교사 개인의 역량이나 인성을 강조하거나 아니면 바뀐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런 점에서 이책은 첫 시도에 가까우면서도 하나의 완성된 형태라는 점에서, 교육사가 아닌 한국 교직의 역사를 다룰 때 중요한 사료로 남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선생님들에게 거대한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나처럼 운이 좋아 살아남은 교사에게 위로가 되고, 일어설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다.
우리의 교육 현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한 모든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한다.
마지막 에필로그까지 이르렀을 때, 뭉클함과 함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고민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꼭 곁에 있는 것이 아니더라도 우린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연대의 힘은 당신을 짓누르는 힘보다 강합니다.
도움을 청하려 손을 내밀면 손을 뻗어 함께할 이들이 인간의 존엄을 쉽게 말살하는 이들보다 많습니다. 제가 살아있기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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