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내가 본 영화: 고레에다 히로카즈, 2023, <괴물> (스포 포함)

블루마레 2023. 12. 17. 23:05

살면서 이렇게 영화관을 많이 간 해가 없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을 보고 왔다. 살면서 처음 포토티켓도 뽑아보았다. (티켓이라기보다는 신용카드 같은 재질이라 놀랬다.)
 


영화를 먼저 본 친구에게 미리 경고를 받았다. 직업 특성상, 특히나 병가를 낸 나에게 PTSD가 올지도 모른다고 했다. 예시로 든 건 무능하고 몸 사리는 관리자였다. 뭐 병가 들어간지 벌써 세 달이 다 되어가는데 그렇겠어? 의사 선생님도 나 보고 예후가 괜찮댔어. 병원에 다녀왔다는 자신감으로 영화관을 갔다.
생각보다, 아니 그냥 몹시 힘들었다. 일단 묻고 보려는 학교의 관리자들, 내 자식이 잘못했을 리 없다는 보호자의 자세,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지만 여러 장치들로 암시되는 아동학대의 기미. <어느 가족>을 비롯해 고레에다 감독이 바라보는 아동학대, 아동학대라고 직접 언급하는 것도 아닌데 학대의 공기를 느끼게끔하는 능력이 이번 영화에서 완전히 정점을 찍었다. 

친구야, 관리자가 트리거가 될 거랬잖아! 딴 건 미리 안 알려줬잖아!

심장이 마구 뛰어서 영화관을 나갈까 수백 번 생각했다. 조금만 참아보자고 눈을 감았더니 일본어가 들려버렸다. 그랬다. 나는 N1을 딴 사람이었고, 초등학생이 쓰는 일본어 정도는 잘 들렸다. 영화관을 나와서 밥을 먹는데 손이 떨려서 돈까스를 계속해서 놓쳤다.
그래, 나 병가 받은 교사 맞구나.
 
그와 별개로 영화 자체는 정말 잘 만든 영화였다.

다큐멘터리 감독 출신으로서의 영화감독이라는 것이 정말 잘 보였다. 특이하게 한 가지 사건을 세 사람의 입장에서 다룬다. 겉으로 봤을 때는 단순한 사건인데 세 가지 방법으로 볼 때 비로소 하나의 사건이 드러난다. 각 인물의 입장에서 보면 각자 다 맞는 말이고, 합리적인 생각이며, 모두가 상대에게 가해자가 된다. 객관적으로 보이는 그 무엇도 사실은 주관적인 것이다, 그걸 무엇보다도 잘 보여주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괴물은 누구인가?'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이 문장이 암시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절로 느껴졌다.

서이초 사건, 일본의 몬스터 페어런츠 문제 등과 맞닿아있는 사회적인 메시지, 주관과 객관이 교차되는 영화 자체의 시선에서 와닿는 거대한 메시지를 느꼈다.

 

교사로서도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과연 단정지을 수 있는 것인가? 나의 시선은 객관적인가? 영화는 아니다, 끝없이 겸손해라, 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여러모로 좋은 영화였다. 괴로웠지만 다시 보고 싶을 만큼. 세상 모든 교사와 부모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였다.